관광객이랑 사진 찍어주는 바다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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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랑 사진 찍어주는 바다사자

현지 주민 수준의 서비스로 지역 홍보대사 바다사자~

 

 

바다사자(Zalophus japonicus)는 동해 연안에 서식하던 바다사자속의 해양 포유류이다. 한국에서는 강치로도 불리며 지능도 꽤나 높다.

 

한반도 동해안 및 일본 열도 해안가에서 주로 서식하였으나, 1900년대 초 상업적 포획으로 인해 개체수가 급감하였다. 한국에서는 1951년 독도에서 50~60마리가 확인되었다는 보고가 마지막이며, 1972년에 홋카이도 인근 레분 섬에서 확인된 개체를 마지막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어, 1994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절멸을 선언했다.
수컷 바다사자는 털가죽 색깔은 어두운 회색에 체중은 450 ~ 560 kg, 신장은 2.3 ~ 2.5 m로 캘리포니아바다사자 수컷보다 컸다. 암컷은 신장 1.64 m로 훨씬 작았고 털가죽은 수컷보다 밝은 색깔이었다.

바다사자는 한반도의 동해안, 일본열도 본토(혼슈)의 해안선(동해안과 태평양안 모두), 쿠릴 열도, 캄차카 반도 남쪽 끝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주요 먹이는 오징어, 명태, 정어리, 연어 등이다. 천적은 범고래와 상어가 알려져 있다.

옛 한국어 기록에 따르면 바다사자와 점박이물범이 동해 뿐 아니라 발해, 황해에도 살았다고 한다. 바다사자는 독도에서 많이 번식했었고 멸종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가죽을 얻기 위해 다케시마어렵회사의 남획으로 그 수가 급격히 줄고 이후 지속된 어업과 수렵을 원인으로 꼽는다. 독도에는 가제바위 등 주변에 바다사자가 쉬기에 좋은 바위가 많고 난류와 한류가 뒤섞여 먹이가 풍부해 바다사자들의 주요 번식지이자 서식지였다. 그래서 '바다사자의 천국'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일본 어부들이 한 해에 많게는 3천~3천200 마리를 잡았으며, 이후 포획량이 줄어 연간 2천마리 1천 마리 정도 남획하다가 결국 멸종됐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바다사자를 '가제' 또는 '가지'로 불렀으며, 독도를 중심으로 동해에 수만 마리가 서식했다고 한다. 이들이 머물렀다는 가제바위가 독도에 남아 있다. 러일 전쟁 전후로 가죽을 얻기 위해 시작된 일본인들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바다사자는 서서히 그 모습을 감춰으며, 1974년 홋카이도에서 새끼 바다사자가 확인된 이후로 목격되지 않는다. 1905년 일본 시마네 현이 이 섬을 무단으로 편입한 이후 일본인들의 어획이 시작됐지만, 1905년 이전에 울릉도에 살던 한국인들은 1904년과 1905년에 독도에서 바다사자를 잡아 매년 가죽 800관(600엔)씩 일본에 수출한 기록이 1907년 시마네 현 다케시마 조사단의 오쿠하라 헤키운이 쓴 책 '죽도 및 울릉도'에 나온다.[5] 바다사자와 물범은 일본 해안선 각지에 이시카이와(アシカ岩→바다사자바위), 이누보사키(犬吠崎→개 짖는 곳) 등의 관련 지명을 남겼다. 후자는 바다사자와 물범의 울음소리가 개 짖는 소리와 비슷해서 붙은 것이다. 우리말 '물개'의 어원도 이와 비슷하다.